게시판에 글을 쓴다는 것이 최선일까 고민이 됐는데
연민으로 가득찬 글이 아니길 바라면서
게시판 글이 누구에게든 상처가 안되길 경계하며
써봅니다.

 

다큐를 만든다는 것이 제게는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 놓는 결과가 아니라
세상을 알아가고 고민을 알아가고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평소에는 없던 집중력과 애정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힘이 생기는 과정입니다.
제게 다큐를 만든다는 것은 제가 서 있는 지점의 고민이
담기는 과정입니다.

 

빈집이 제게 보였던 건
제가 서 있던 그 지점에서
그 앞에 놓였던 길이 자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길 밖에 없던 답답함과 황망함이 가득했을 때
다른 무엇도 보이지 않았을 때
보였던 가느다란 그렇지만 강렬한 가능성이었습니다.
다른 삶의 방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꿈 꿨던 것들이 현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 불안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
그런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처음 다큐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너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마음은 큰데 생활이 드러나는 공간에서
카메라를 든다는 것이 너무나 가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고 주저했지만
제 현실의 황망함이 용기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다큐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빈집이 그냥 피사체 이기만 한 것은 의미가 없다,
빈집에서 다큐를 한다면 적어도 같이 해야 의미가 있지 않겠냐,
빈집 사람들 중에도 영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같이 팀을 꾸려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래, 빈집이라면 그게 더 의미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해보지 않던 방식이지만 빈집이라면 할 수 있겠단 기대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면밀히 생각해 봤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빈집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스텝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가능한 지 등을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큐 제작의 역할을 나누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다큐를 만드는 데 얼마나 전문적인 정보와 기술이 필요한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를 처음 들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다큐를 제작할 수 있다고
경험으로 그리고 많은 작품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쉽게 생각했습니다.
전문적이다 그렇지 않다 보다는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느냐,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스텝을 구성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획서를 쓰긴 했지만
다큐멘터리 기획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지 그렇게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라
어떻게 만들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년 상반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하반기때 부터는 여러 고민이 됐습니다.

여전히 전 외부인이었고 빈집사람이 되지 않으면 빈집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이
기존의 매체가 빈집을 다룬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사네, 좀 특이하네, 젊어서 한 때 다 꿈꾸는 거지 등과 같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제게 빈집이 보였던 의미와는 멀기에, 빈집을 통해서 다른 삶의 방식, 다른 질서를 찾고자 했던 의미와는 멀기에

빈집 사람이 되는 시기가 필요했습니다.
당시부터는 카메라를 들긴 했지만 빈집을 기록하자는 의미였지 다큐를 만들자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고민스러웠고 그부분은 차차 찾아나가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다큐를 만드는 것은 빈집 공동의 프로젝트였고
저 혼자서 그 문제를 다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일반적으로 다큐를 만들것이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큐를 만드는 것이 빈집 프로젝트였고 저에게 다큐를 만든다는 것이
무언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기다렸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같이 팀을 꾸렸던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미안하지만 개인작업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아서 독단적이었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팀 안에서 이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하자라는 이야기를 한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안했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온전히 저한테로 떨어지는 지금의 비난이
제가 다큐작업을 빈집의 프로젝트였는데 그걸 빈집안에서 공론화시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것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 부분은 스스로도 부끄러울 만큼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여러 시도를 했지만 팀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자발성에 매번 답답함과 기다림을 반복하면서
거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오히려 빈집 내에서 소통하지 못한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장 후회스럽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8월, 9월을 보내면서 늦었지만 좀 더 열린 자리에서 빈다큐 이야기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잇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빈다큐에 제작방식에 대한 전제가 달랐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에 답글을 단다는 것이 그 글을 쓴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리를 만들었고 다행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 자리는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그래서 서로 각자 알아서 생각했어야
했던 것들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이후에는 뭔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야 한단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활동을 평가하고 가능한 것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빈다큐 팀의 누구도 이야기를 책임있게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아니 팀내의 누구 보다도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도 같이 하자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제안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저는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빈집과 한 약속, 빈다큐를 만들겠다는 약속.
그게 공작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있었던 요구와 약속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저 혼자만의 의견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동프로젝트라면 말이지요.

궁금해 하고 관심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월요일에 말랴에게 이야기를 같이 하자고 했지만 우선 의견을 올려라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수요일까지 몇몇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그걸 모아서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정란이 잇이 공작빈을 안하겠다고 해서 공작빈이 없어지나요?
슈아는 공작빈이 아닌가요? 슈아는 빈집 사람이 아닌가요?
그걸 누가 정할 수 있나요?
빈집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래서 공동체가 아니라고
굳이 이야기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전 지금도 공작빈이 빈다큐 작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했던 활동 평가를 통해 빈다큐 작업이 빈집프로젝트를 빈집 사람들이
스텝형식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동안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빈집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걸 다큐에 담기 위해 그래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몇몇이 스텝형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같이 고민할 수 있는 틀 거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걸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뭘 할 것인지 등을 하나씩 같이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게 촬영본을 같이 보고 기획을 같이 하고 그런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처럼 누구의 문제로 환원되는 분위기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쉽게는 안되겠지요. 시간이 걸리겠지요.

저도 저의 그동안의 게으름에 스스로 반성도 해야 하고 그리고 한동안 기운도 좀 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빈다큐는 공작빈의 활동은 계속 천천히 빈집의 무수한 프로젝트처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리고 약속을 한 이상 책임지고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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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누군가
잇이 제기한 의문에 짧게 한 줄로 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가지는 이미 해소됐을 꺼라 생각하고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거라 안쓰려했지만 아마도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거라 생각되어 씁니다.

정란의 임금이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 물었지요.
전 임금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공동프로젝트이니까요. 정란도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시 회사를 관두고 생활 리듬을 위해 알바를 찾겠다는 정란이 알바를 구하는 동안이라도

공간분담금만이라도 해결보자는 마음에 12만원을 쓰기로 한 겁니다.
정란도 동의한 내용입니다.
그때 까지 지원금 중에서 진행비 이외 개인에게 나간 것은 없습니다.
저 또한 그돈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정란의 분담금을 제작비에서 나가기로 하면서
슈아의 분담금도 같이 제작비에서 나갔습니다. 지금 제작비는 디엠젯 지원금 그래도 있고
그전에 받은 것 중 컴퓨터와 카메라 3대 그리고 진행비 등을 제외하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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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써는 관심 있는 사람들과 담주 목욜 즈음 빈다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빈집 사람들과 논의할 것인지, 빈다큐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빈다큐에는 어떤 이야기 등이 필요한 지,

빈집을 다큐와 상관 없이 계속 기록하는 체계를 어떻게 만들지 등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경계하면서 쓴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 글 때문에 누군가 언짢다면 미안합니다.
계속 논의하겠습니다.


우마

2010.11.12 06:11:25

공작빈, 슈아, 빈집 그리고 빈가게 힘내!!

지각생

2010.11.12 11:44:17

글을 읽으며 힘들게 써내려갔다는 느낌이 들고, 맨처음 공작빈과 여러 빈집내 프로젝트 팀이 만들어질때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이후로 계속 빈집과 함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저도 오랜 시간동안 "내 전문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의 일처럼 생각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빈다큐가 만들어지는 걸 바랬던 사람 중의 한 명일거에요. 


과정이 어쨌던간에 '빈다큐'는 공동 프로젝트로 방향이 잡혔고, 지금 이 상황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잘못과 함께 혹은 그 전에, 모두가 나눠 짊어질 책임을 밝히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뭘 숨기거나 희석시키자는 뜻은 당연히 아니구요. 


2년 반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들이 있었고, 그 중 적은 일부만 실제로 수행되고 그 중에서도 일부만 현재까지 이어졌습니다. 대다수의 프로젝트들은 개개인의 잘못 혹은 집단 소통의 어려움, 여러 맥락들로 인해 폐기 혹은 무기한 보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공작빈의 경우도 그런 많은 케이스 중의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공통적인 부분을 짚어내고 나서 이 사안의 특별한 점, 그 가운데 개인의 잘잘못을 필요하다면 지적해내는 순서로 가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가장 덜 마음 아픈 방향으로 실마리가 풀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모두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빈집을 "공동체"라고 여기고 공동체라면 어떤 충격을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감내하게끔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기본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지금껏 여러 나날동안, 여러 프로젝트, 사건들에서 특별히 많이 감내해왔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지는건 어쩔 수 없군요. 


말을 시작하니 하고 싶은 말이 많긴 한데.. 정리하면 모두 그 동안 힘들었던 점을 "우리가 다 저마다 약한 부분을 가진 사람이 모인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얘기를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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