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모심과 살림 연구소에서 이런 모임을 하네요.

만행의 <4시간 노동> 팀도 참여할 것 같아요.


저 아래는 이 모임의 제안서 격인 글인데...

우리 일 관련해서도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半백수모임(가칭)> 만납니다.

모십니다!

* 9월 16일 늦은 7시
* 장소는 장충동 한살림 5층 교육장

만나서 인사 나누고 앞으로 어찌 해야 할 지 의논도 하고.
물론 막걸리도 한 잔 해야겠지요.

한 가지 제안 드립니다.
이왕 모이는 김에 ‘半백수 현실과 노동의 대안’에 대한 글, 영상, 이미지, 혹은 정보 하나씩 들고 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정보 하나. 어느 책을 뒤져 보니 이미 20년전 일본사람이 쓴 [반나절노동사회로]라는 책이 있더라고요. 탐문 중.)

연락이 잘 갈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혹 바쁘시더라도, 혹 계속 참석이 어렵더라도, 혹 댓글을 안 달았더라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님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마음이 동하시어 함께하실 분들은 아래에 댓글을 달아주시거나
lsj@hansalim.or.kr  여기로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주세요.
몇분이 오실지, 미리 찻잔이라도 준비해 두려구요.
물론, 마지막까지 고민하시다가 연락없이 뛰어오셔도 됩니다.^^


세상 일 걱정할 것 많지만, 그럼에도, ‘神나는’ 하루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장충동에서 사발지몽&수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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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 너머, 半백수의 경제학

주요섭(모심과살림연구소 부소장)


“21세기에는 주 21시간 노동을” 

‘주 21시간 노동’, 기후변화와 지구적 불평등과 경제위기에 대한 영국의 엔지오 nef(new economy foundation)의 해법이다. 여기서 ‘노동’이란 물론 기업이나 정부조직에 고용되어 돈 받고 일하는 임금노동(paid work), 고용노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어떻게 당면한 위기를 해결한단 말인가?

그 답은 대충 이런 정도. “주 21시간 노동은 초과노동시간, 과소비, 실업, 탄소배출, 삶의 질 저하, 불평등의 고착과 같은 절박하고도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문제들의 열쇠가 된다. 오히려 삶을 즐기고, 서로를 돌보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해준다.”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과도한 생산활동으로 인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을 줄여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고(더불어 임금소득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소비의 감소로 이어진다.), 둘째, 일자리 나눔을 통해 구조적인 고용위기를 해소하고 작은 일자리들의 확대로 노인 등 노동약자들의 노동 기회가 늘어나며, 셋째, 자립적 생활노동과 충분한 여가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자본주의적 사회경제시스템을 바꾸는, 문명 전환의 전략적 고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아직은 먼 훗날의, 먼 희망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8월 폭염 속의 한국사회, 노동과 여가를 생각한다. 모두들 알다시피 한국의 노동시간은 살인적이다. 2008년 기준으로 연 2,256시간으로 OECD 평균 1,764시간보다 492시간이나 더 많다고 한다. 당연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등’이다. 이는 여름휴가는 물론 명절도 없이 1년 내내 꼬박꼬박 주당 44시간 이상을 일하는 셈이다.)


불안정노동과 半백수의 경제학

이를테면 半백수의 경제학이다. 주당 40시간을 넘는 돈벌이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싹둑 자르는 것이다. 부분취업 자체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험사회’로 유명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라는 책에서 임금노동의 단축과 새로운 노동의 가능성과 의미를 펼쳐 보인다. 한 마디로 완전고용사회를 포기하고 부분취업을 제도화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일자리, 혹은 ‘시민노동’으로 불안정 노동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로피언 드림]으로 널리 알려진 제레미 레프킨이 쓴 [노동의 종말]의 해법도 결국 ‘제3 부분’, 혹은 ‘사회적 경제’에 있다.

물론 21시간의 돈벌이노동(임금노동)만 하고 놀 수는 없다. 일을 해야 한다. 생활노동과 시민노동(혹은 공동체노동)이 그것이다. 텃밭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며 매일 혹은 매주 부모님을 문안하고 아이들을 돌본다. 대형마트의 식료품코너와 세탁소와 요양원과 학원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나 할까. 노동력을 팔아 그 돈으로 구매했던 ‘생활의 필요(needs)’를 직접 자기 손으로, 자립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더불어 돌봄서비스, 생태계보호, 교통안전 캠페인 등 ‘공동체적 필요’를 시민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시민노동(공동체노동)을 통해 협동적으로 풀어낸다.

노동시간 단축은 ‘시간주권’의 회복이기도 하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 얻는 화폐소득은 줄어들지만 대신 임금노동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자유시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 대신 시간을 취하는 것이다. 정말 반절은 돈벌이노동하고 반절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半백수가 되는 것이다. 백수(白手)라는 말 뜻 그대로 가진 것은 없지만 시간은 엄청 많은, 무궁무진한 창조의 여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명운동은 그간 ‘생명(=전일적 삶)’을 화두로 하는 세계관적 대안, 자립과 협동의 생활양식의 대안을 선언하고 실천해왔다. 그렇다면 생명운동의 사회적 대안은? 호혜사회도 좋고, 순환사회도 좋고, 창조사회도 좋다. 다시, 사회적 전환의 핵심전략은?

노동시간의 단축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사회적 대안을 탐색하는 많은 연구자, 운동가들이 제안하는 전환의 전략이다. 이를테면, 생명운동의 눈으로 본 ‘노동의 대안’, ‘생명활동으로써의 노동’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기도 하다. ‘돈의 길(money based path)’ 對 ‘삶의 길(life based path)’의 구도에 대응시켜 보면 ‘임금노동’에 대한 ‘살림노동(생활노동)’의 대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임금노동과 살림노동의 ‘역동적 균형’이라고 해야겠지만.(임금노동과 비임금노동, 그리고 임금노동과 재생산노동 혹은 그림자노동, 그림자노동과 살림노동과의 관계, 여성의 살림노동을 화폐가치로 환산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는 우리 시대 최대의 사회문제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생명/생태 담론의 대답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비정규직 문제의 답일까? 가능한 일일까? 물론 1960, 70년대 서유럽의 황금시대에 ‘완전고용의 전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단지 신자유주의 탓만은 아니다. 산업자본주의 이후 이윤창출 구조가 바뀌고 노동형태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제조업의 시대로, 복지국가와 완전고용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자본주의 임금노동, 고용노동, 소외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진보의 비전이지 않았던가?

물론 전제가 필요하다. 임금노동과 살림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대안적 노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차별 없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도입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사회(공동체)가 시민(혹은 민중)의 생존과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와 ‘사회적 안전망’이 선행되어야 한다(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 혹은 사회적 안전망의 주체가 누가인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노동자, 기업, 협동조합, 종교계 등 사이에 사회계약이 이루어지더라도 국가에 재분배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 ‘다른 선택’

생활협동운동은 일찍부터 ‘노동의 대안’을 탐색해왔다. <두레생협연합회>에서 ‘지역생명운동’ 전략 찾기의 일환으로 ‘두레노동’을 열쇠말로 새로운 노동의 의미와 주체, 가치 등에 대해 정리한 바 있으며, <한살림>에서도 임금노동과 살림노동의 관계를 중심으로 생협에서의 조합원노동의 의미에 대해 토론한 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심도 있는 토론과 이론적 정립, 그리고 파격적인 실험이 필요하다.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말하면, 임금노동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은 화폐소득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고, 이는 곧 시장경제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며 no money economy를 창출하는 것이다. 나눔을 통해 생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 없는 번영(prosperity without growth)’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물론 당장 그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노동시간 단축의 실천은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사변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성장 없는 번영]은 영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2009년 발행한 보고서의 제목임.)

엔지오들과 협동조합과 공동체에서부터 먼저 실험하고 연구해볼 일이다. 활동가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활동가들의 임금노동시간을 대폭 줄이고, 청년백수들과 일자리를 나누고, ‘작은 일자리’ 네트워크를 만들고, <청년유니온>을 지원하고, 노동자(생산자)협동조합 지원센터를 만들고, 지역통화나 에코머니, 혹은 현물 등 비화폐적 보상체계를 만들고, 살림노동(생활노동)지원센터를 만들고, 매주 하루 농사짓는 날을 정하고, 소생산자들을 위해 무이자 은행을 만들기 등등.(사실 귀농·귀촌과 생태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운동은 그 자체로 임금노동으로부터의 탈주라 할 수 있다. 생활의 대안, 새로운 노동의 실험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른 선택의 사회화’.)

이를테면 ‘생명운동과 노동의 대안’을 탐색해보자는 것이다. 노동사회를 넘어 창조사회로의 전환을 기획하고 실천하며, 창조사회의 주체들, 즉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半백수들과 건달바들의 탄생을 잉태해보자는 것이다. 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더위 좀 수그러들면 작은 연구모임을 시작해볼 생각이다. 연락 환영!)